괴담
분실물 보관함에 남은 이름들
누군가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갔다. 그런데 보관함 안에는 물건보다 먼저 이름표가 걸려 있었다.
처음에는 창구만 보였다.
지하철역 끝, 화장실 표지판과 직원용 문 사이에 불 켜진 칸이 하나 있었다. 셔터는 반쯤 내려와 있고, 안쪽은 너무 어두워서 사람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. 유리 아래 좁은 틈으로 노트 한 권이 밀려 나와 있었다. 겉장에는 볼펜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.
분실물 보관함
물건을 찾으러 온 사람은 이름을 남길 것.
노트 첫 장은 멀쩡했다. 지갑, 우산, 학생증, 이어폰. 흔한 물건들이 줄을 맞춰 적혀 있었다. 그런데 물건 칸보다 비고 칸이 더 길었다. 누가 찾아갔는지, 어디에 있었는지, 무슨 말을 했는지까지 적혀 있었다.
1 : 검은 우산 / 3번 출구 계단 밑 / 주인이 울고 있음.
2 : 학생증 / 2호선 승강장 끝 / 부르면 돌아본다. 부르지 말 것.
3 : 은색 반지 / 보관 중 / 주인은 아직 잃어버린 줄 모름.
처음에는 장난 같았다. 누군가는 욕을 써 놓았고, 누군가는 “직원 없으면 어디로 전화하냐”고 적었다. 그런데 뒤로 갈수록 종이가 눅눅했다. 같은 이름이 두 번 나오고, 지워진 칸에 손톱자국이 남아 있었다. 물건 이름은 점점 짧아졌고, 사람을 설명하는 말만 길어졌다.
그날 지갑을 찾으러 온 사람은 노트 아래쪽에 이름을 적었다. 볼펜 끝이 종이에 닿자마자 창구 안에서 서랍이 열렸다. 쇠가 바닥을 긁는 소리였다. 안쪽에서 손 하나가 나왔다. 손목 위로는 보이지 않았다. 손은 검은 지갑을 내려놓고 다시 들어갔다.
지갑 안에는 현금도 카드도 그대로 있었다. 대신 접힌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. 사진 속에는 방금 이름을 쓴 사람이 창구 앞에 서 있었다. 목을 조금 숙이고, 손에는 같은 지갑을 들고 있었다. 사진 뒷면에는 내일 날짜가 적혀 있었다.
그때부터 노트의 말투가 바뀐다.
7 : 물건 받으면 바로 나가. 안에서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마.
9 : 손 봤냐. 손목이 없다. 창구 안에 팔만 있다.
12 : 내 물건 없다고 했는데 안에서 내 목소리가 나온다.
15 : 보관함 열지 마. 분실물이 아니라 사람이 접혀 있다.
창구 옆 벽에는 작은 번호표 기계가 붙어 있었다. 종이는 다 떨어져 있었는데도, 안에서 번호표 뽑히는 소리가 났다. 틈 아래로 하얀 종이가 하나 밀려 나왔다. 번호는 31번이었다. 물건 이름은 비어 있었다.
창구 안쪽에서는 노트를 넘기는 소리가 계속 났다. 한 장, 두 장, 세 장. 유리 너머에서 누군가 볼펜을 딸깍거렸다.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, 안내 방송은 자꾸 같은 말을 반복했다.
분실물 보관함에서 손님 찾는 중.
이름은 정확했다. 방금 노트에 쓴 이름이었다. 방송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. 승강장 쪽 스피커, 개찰구 위 스피커, 화장실 천장 스피커에서 같은 이름이 조금씩 늦게 따라왔다. 멀리서 부르는 소리일수록 더 닮아 있었다. 마지막에는 자기 목소리처럼 들렸다.
그 사람은 사진을 찢었다. 지갑을 주머니에 넣고, 노트는 덮지 않았다. 출구 쪽으로 걸었다. 그런데 자동문 앞에서 발이 멈췄다. 주머니 안 지갑이 없었다. 대신 손바닥 안에 번호표가 접혀 있었다. 31번. 방금 버린 줄 알았던 종이였다.
돌아보면 안 된다는 생각은 들었다. 그런데 창구 안에서 낮은 소리가 났다.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아니고, 물건을 꺼내는 소리도 아니었다. 젖은 천을 접는 소리였다. 한 번 접고, 다시 반으로 접는 소리.
노트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남아 있다.
31 : 이름표 찾음. 줄에 매달려 있었음. 다른 이름표들 사이에서 이것만 아직 따뜻함.
그 아래 칸은 비어 있다. 물건 이름을 적는 칸도, 주인 이름을 적는 칸도 아직 비어 있다. 창구 안에서는 서랍이 아주 천천히 열린다.